런던 핸버러에 가면 플렁킷이 있다.
1919년 호러스 플렁킷이 창립한 재단으로
농촌 사회가 자신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에 대한
소유권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영국에서 농민들은 농산물을 생산하고도
거대 유통 기업들의 농간으로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플렁킷은 지역 사회 소유의 가게,
지역 사회가 지원하는 농업 기업,
농부 시장을 만드는 일을 지원한다.
성공 사례 중 하나가 스트라우드 커뮤니티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이익을 볼 수 있도록
서로를 연결하는 지역사회 지원 농업이다.
상호지원 네트워크가 생기는 셈이다.
우리나라에도 생산자와 소비자를 잇는
노력들이 있다.
이풀약초협동조합의 노봉래 대표도
이런 고민을 10여 년 전부터 해왔다.
그는 이풀약초협동조합을 세우기 전
약초를 생산하는 약용작물
생산자단체에서
20여 년 가까이 일을 해왔다.
쉬운 길을 버리고 인증농법으로
약초 농사를 지어도
시장에서는 더 굵고 보기 좋은 것,
더 값싼 것만을 선호했다.
그러나 정직한 생산농법으로 만들어진 약초가
가격은 비싸도 몸에 좋고 지속 가능했다.
농부가 직접 참여해
약초가 제값 받고 거래되는
건강한 시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뜻을 같이한 농부들이
‘이풀약초협동조합’을 세웠다.
생산자에겐 제값을 받는 안정된 판로를,
소비자에겐 믿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참여자 모두가 ‘이로움’을 얻는 곳,
이풀약초협동조합의 노봉래 대표를
만나보았다.

노봉래 이풀약초협동조합 대표
Q. 이풀약초협동조합의
‘이풀’은 무슨 뜻일까요?
이풀은 ‘이로운 풀’의 약자에요.
소비자에게 이로운 풀을 제공한다는 의미죠.
2013년 건강한 약초 시장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설립되었습니다.
친환경농법으로 약초농사를 짓는 농부,
건강한 약초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운영진 등
17명의 조합원이 함께하고 있어요.
Q. 기존에 한국생약협회에서
10여 년 간 일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을 설립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일하면서 약초 재배 농부들의
힘든 삶을 많이 봤어요.
농부들이 정성껏 약초재배를 해도
시장에서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요.
그러다 유통 상인들한테 헐값으로 넘기죠.
이런 시장이 안타까웠어요.
약초는 수입산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국산의 생산 비중이 점점 낮아져요.
왜일까요?
약초를 주로 소비하는 곳은
의료기관이에요.
한의원 같은 곳이요.
그분들이 국산 약초를 점점 적게
사용하는 거예요.
새로운 유통활로를 뚫어야 했어요.
전통의 소비처가 아닌
새로운 소비처를 찾아야한다는
문제의식이 생겼습니다.
보통 약초하면 한약 원료,
혹은 맛이 쓰다는 고정관념이 있거든요.
그것을 깨고 일반 소비 트렌드에 맞는
상품과 서비스를 공급하기 위해
협동조합을 설립했죠.
처음부터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는 것에
초점을 뒀어요.
약초를 벌크로 납품하는 시장은
너무 많고 제한적이라
굳이 뛰어들 필요가 없었죠.
Q. 문제를 정책적으로
풀어볼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정부가 좋은 약초 생산을 장려하기 위해
계도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만들면 내가 바로 사줄게’라고
말하는 게
농민에게는 훨씬 명확하고 구체적이에요.
정부에서도 GAP인증
(Good Agriculture Practice,
농산물품질관리인증)
이라는 걸 만들었어요.
그렇지만
그렇게 힘들게 재배해도
가치를 인정해주는 구매자를
찾기 힘들죠.
그래서 저희 협동조합에서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
농민들에게 제시하고,
그에 맞춰 생산한 약초를 좋은 값에
사게 된 거죠.
Q. 우리 약초가 해외 약초보다
품질이 더 좋은가요?
전 세계엔 35만 여종의 식물이 있어요.
이 가운데 단 4,200여 종,
1.2%의 식물만이
우리나라 땅에서 자라죠.
이들 중 사람의 몸에 ‘이로운 풀’이
700여 종(0.2%)이에요.
이게 우리나라에서 약용식물,
혹은 ‘약초’라는 이름으로 불려요.
그 중 우리나라에서 나는 게
100가지 정도에요.
우리 농가에서 생산하는 건
20~30여 가지고요.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남은 약초들은
경쟁력이 있어요.
1994년 이후 계속되는 수입개방으로
해외의 약초가 한국에 많이 들어왔어요.
값싼 약초가 들어오다 보니
약초농가들이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죠.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보호해주는 농산물은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는데,
약초는 밀릴 데로 다 밀려서
그만큼만 남았어요.
수입 약초가 아무리 들어온다고 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거죠.
산수유, 황기, 당귀 같은 것들이요.
이풀약초협동조합에서는
그렇게 선별된 좋은 약초로
대중 친화적인 제품을 만든다.
몸을 가볍게 해주는
‘시트러스 필’,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페릴라 민트’,
감기 기운이 있을 때 추천하는
‘지친 일상 그대를 위한 2g의 휴식’,
우울한 날에 마시기 좋은
‘까칠해진 그녀를 위한 2g의 배려’가
그 제품이다.
페릴라 민트에는
차조기 잎과 은은한 감귤피가
생강에 녹아 숨을 트이게 하고,
활력을 주는 산수유, 솔잎, 계피가
더 해져
스트레스를 완화시킨다.
‘지친 일상 그대를 위한 2g의 휴식’에는
도라지, 향긋한 차조기 잎에
생강, 대추, 제주 유기농 귤피를 함께
블렌딩해
감기 기운이 있을 때 마시기 좋다.
Q. 약초를 대중화하기 위해 택한
첫 시도가 티백차라고
알고 있어요.
차를 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약초라고 하면 보통 한약재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고정관념을
뛰어넘고 싶었어요.
다른 용도로 약초를
잘 사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 커피 많이 마시잖아요.
커피 원두를 블렌딩하는 것처럼,
자신에게 맞는 약초들을 고르고
블렌딩해서 마시는 맞춤 차를
만드는 거예요.
맛과 향이 기존의 허브티 못지 않아
시장 반응도 좋아요.
Q. 고객들이 약초로 만든
티백차를 커피처럼 즐기게 하는 게
어려운 일일 것 같은데요.
그게 제일 힘들어요.
고정관념이요.
아직도 그걸 넘지 못하고 있어요.
커피를 마시면 어디에 좋냐고
안 물어보는데
약초를 내놓으면 꼭 어디에 좋냐고
물어봅니다.
맛있고 향긋해서 즐긴다기보다
성분을 따지죠.
물론 약초로 만든 티백차도
효능을 가지고 있지만
관련 법령에 따라 홍보할 수는 없으니
더 어려운 일이죠.
참 좋은데 뭐라고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에요.
Q. 약초 대중화를 위해
다른 활동도 하고 계시나요?
이풀 사업이 크게 보면
세 가지로 볼 수 있어요.
하나는 약초를 원료로 제품을 만들어서
경험을 늘려주는 거고요.
약초학교가 두 번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약초의 활용법을 잘 몰라요.
오랜 시간 달이는게 편리하지 않고
뭐든지 빠른 요즘 세상과 잘 안 맞는 거죠.
그래서 좀 더 편리한,
즉 전통 약초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제품이
필요해요.
약초학교에서는 약초가 뭔지,
약초별 성질과 성격, 활용법 등을
가르쳐드리고 있어요.
차로 만드는 법, 밥할 때
이용하는 법 등에 대한
원데이클래스도 운영하고요.
마지막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교류하는
커뮤니티 공간
‘이풀공방’을 운영하는 일입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다 같이 모여 대화도 하고,
약초 생산 과정도 듣고,
제품화도 고민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요.
이풀은 2019년 5회에 걸쳐
‘이로운 풀로 세상과 소통하기’를 주제로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약초 선별 등 단순 작업만 하던
발달장애인 직원에게서
숨겨진 그림 솜씨를 발견한 것이 계기다.
발달장애인 직원이 그린
약초 그림엽서 100세트를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오픈하기도 했다.
이풀약초협동조합은 앞으로도 계속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여력이 된다면
발달장애인 직원을 더 고용할 생각이다.
이왕이면 사회에 이로운 방식으로
사업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Q. 사회혁신에 걸맞은 활동을
많이 하고 계시네요.
협동조합을 시작할 때
‘우리 협동조합은 어떻게 운영할 거다’라고
계획을 설명하기보다는
‘자, 이제 3년 버티기에 들어갑니다.’라고
말했어요.
3년 동안 버티면 뭔가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3년이 훌쩍 넘었잖아요?
기간을 늘렸어요.
(웃음)
사업하면서 느낀 건
외부에서 정량적인 지표로
우리 사업을 평가하는 데
기대지 말자는 겁니다.
결국 나의 만족도가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이 사업을 놓지 않으면
성공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거 지지부진하고 눈에 띄는 성과는
보이지도 않네?’라고 해도,
나는 그 안에서 꼬물꼬물대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하고 부대끼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어요.
혁신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버텨야 나오는 거죠.
책상에 앉아서
갑자기 아이디어가 탁 튀어나와서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Q.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는데도
계속 버티시는 이유는 뭘까요?
어떻게 하다 보니 헤어 나오지 못하고
계속하고 있네요.
업보 때문일까요. (웃음)
한 가지 가슴에 담고 있는
농민과의 에피소드가 있어요.
저희가 생산자들과 회의를
주기적으로 하는데
회의에서 이야기하는 만큼
무언가 실현되는 건 많지 않아요.
그런데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도 누군가와 이런 이야기를
같이 하고나면
돌아설 때 마음이 후련하다”고요.
이풀이 그런 역할을 한다고요.
참 어려운 시장이지만
농민 입장에서는
누군가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거죠.
성공 여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주고 있다는 것.
런던 핸버러에 가면 플렁킷이 있다.
1919년 호러스 플렁킷이 창립한 재단으로
농촌 사회가 자신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에 대한
소유권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영국에서 농민들은 농산물을 생산하고도
거대 유통 기업들의 농간으로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플렁킷은 지역 사회 소유의 가게,
지역 사회가 지원하는 농업 기업,
농부 시장을 만드는 일을 지원한다.
성공 사례 중 하나가 스트라우드 커뮤니티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이익을 볼 수 있도록
서로를 연결하는 지역사회 지원 농업이다.
상호지원 네트워크가 생기는 셈이다.
우리나라에도 생산자와 소비자를 잇는
노력들이 있다.
이풀약초협동조합의 노봉래 대표도
이런 고민을 10여 년 전부터 해왔다.
그는 이풀약초협동조합을 세우기 전
약초를 생산하는 약용작물
생산자단체에서
20여 년 가까이 일을 해왔다.
쉬운 길을 버리고 인증농법으로
약초 농사를 지어도
시장에서는 더 굵고 보기 좋은 것,
더 값싼 것만을 선호했다.
그러나 정직한 생산농법으로 만들어진 약초가
가격은 비싸도 몸에 좋고 지속 가능했다.
농부가 직접 참여해
약초가 제값 받고 거래되는
건강한 시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뜻을 같이한 농부들이
‘이풀약초협동조합’을 세웠다.
생산자에겐 제값을 받는 안정된 판로를,
소비자에겐 믿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참여자 모두가 ‘이로움’을 얻는 곳,
이풀약초협동조합의 노봉래 대표를
만나보았다.
노봉래 이풀약초협동조합 대표
Q. 이풀약초협동조합의
‘이풀’은 무슨 뜻일까요?
이풀은 ‘이로운 풀’의 약자에요.
소비자에게 이로운 풀을 제공한다는 의미죠.
2013년 건강한 약초 시장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설립되었습니다.
친환경농법으로 약초농사를 짓는 농부,
건강한 약초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운영진 등
17명의 조합원이 함께하고 있어요.
Q. 기존에 한국생약협회에서
10여 년 간 일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을 설립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일하면서 약초 재배 농부들의
힘든 삶을 많이 봤어요.
농부들이 정성껏 약초재배를 해도
시장에서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요.
그러다 유통 상인들한테 헐값으로 넘기죠.
이런 시장이 안타까웠어요.
약초는 수입산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국산의 생산 비중이 점점 낮아져요.
왜일까요?
약초를 주로 소비하는 곳은
의료기관이에요.
한의원 같은 곳이요.
그분들이 국산 약초를 점점 적게
사용하는 거예요.
새로운 유통활로를 뚫어야 했어요.
전통의 소비처가 아닌
새로운 소비처를 찾아야한다는
문제의식이 생겼습니다.
보통 약초하면 한약 원료,
혹은 맛이 쓰다는 고정관념이 있거든요.
그것을 깨고 일반 소비 트렌드에 맞는
상품과 서비스를 공급하기 위해
협동조합을 설립했죠.
처음부터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는 것에
초점을 뒀어요.
약초를 벌크로 납품하는 시장은
너무 많고 제한적이라
굳이 뛰어들 필요가 없었죠.
Q. 문제를 정책적으로
풀어볼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정부가 좋은 약초 생산을 장려하기 위해
계도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만들면 내가 바로 사줄게’라고
말하는 게
농민에게는 훨씬 명확하고 구체적이에요.
정부에서도 GAP인증
(Good Agriculture Practice,
농산물품질관리인증)
이라는 걸 만들었어요.
그렇지만
그렇게 힘들게 재배해도
가치를 인정해주는 구매자를
찾기 힘들죠.
그래서 저희 협동조합에서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
농민들에게 제시하고,
그에 맞춰 생산한 약초를 좋은 값에
사게 된 거죠.
Q. 우리 약초가 해외 약초보다
품질이 더 좋은가요?
전 세계엔 35만 여종의 식물이 있어요.
이 가운데 단 4,200여 종,
1.2%의 식물만이
우리나라 땅에서 자라죠.
이들 중 사람의 몸에 ‘이로운 풀’이
700여 종(0.2%)이에요.
이게 우리나라에서 약용식물,
혹은 ‘약초’라는 이름으로 불려요.
그 중 우리나라에서 나는 게
100가지 정도에요.
우리 농가에서 생산하는 건
20~30여 가지고요.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남은 약초들은
경쟁력이 있어요.
1994년 이후 계속되는 수입개방으로
해외의 약초가 한국에 많이 들어왔어요.
값싼 약초가 들어오다 보니
약초농가들이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죠.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보호해주는 농산물은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는데,
약초는 밀릴 데로 다 밀려서
그만큼만 남았어요.
수입 약초가 아무리 들어온다고 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거죠.
산수유, 황기, 당귀 같은 것들이요.
Q. 약초를 대중화하기 위해 택한
첫 시도가 티백차라고
알고 있어요.
차를 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약초라고 하면 보통 한약재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고정관념을
뛰어넘고 싶었어요.
다른 용도로 약초를
잘 사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 커피 많이 마시잖아요.
커피 원두를 블렌딩하는 것처럼,
자신에게 맞는 약초들을 고르고
블렌딩해서 마시는 맞춤 차를
만드는 거예요.
맛과 향이 기존의 허브티 못지 않아
시장 반응도 좋아요.
Q. 고객들이 약초로 만든
티백차를 커피처럼 즐기게 하는 게
어려운 일일 것 같은데요.
그게 제일 힘들어요.
고정관념이요.
아직도 그걸 넘지 못하고 있어요.
커피를 마시면 어디에 좋냐고
안 물어보는데
약초를 내놓으면 꼭 어디에 좋냐고
물어봅니다.
맛있고 향긋해서 즐긴다기보다
성분을 따지죠.
물론 약초로 만든 티백차도
효능을 가지고 있지만
관련 법령에 따라 홍보할 수는 없으니
더 어려운 일이죠.
참 좋은데 뭐라고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에요.
Q. 약초 대중화를 위해
다른 활동도 하고 계시나요?
이풀 사업이 크게 보면
세 가지로 볼 수 있어요.
하나는 약초를 원료로 제품을 만들어서
경험을 늘려주는 거고요.
약초학교가 두 번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약초의 활용법을 잘 몰라요.
오랜 시간 달이는게 편리하지 않고
뭐든지 빠른 요즘 세상과 잘 안 맞는 거죠.
그래서 좀 더 편리한,
즉 전통 약초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제품이
필요해요.
약초학교에서는 약초가 뭔지,
약초별 성질과 성격, 활용법 등을
가르쳐드리고 있어요.
차로 만드는 법, 밥할 때
이용하는 법 등에 대한
원데이클래스도 운영하고요.
마지막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교류하는
커뮤니티 공간
‘이풀공방’을 운영하는 일입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다 같이 모여 대화도 하고,
약초 생산 과정도 듣고,
제품화도 고민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요.
Q. 사회혁신에 걸맞은 활동을
많이 하고 계시네요.
협동조합을 시작할 때
‘우리 협동조합은 어떻게 운영할 거다’라고
계획을 설명하기보다는
‘자, 이제 3년 버티기에 들어갑니다.’라고
말했어요.
3년 동안 버티면 뭔가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3년이 훌쩍 넘었잖아요?
기간을 늘렸어요.
(웃음)
사업하면서 느낀 건
외부에서 정량적인 지표로
우리 사업을 평가하는 데
기대지 말자는 겁니다.
결국 나의 만족도가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이 사업을 놓지 않으면
성공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거 지지부진하고 눈에 띄는 성과는
보이지도 않네?’라고 해도,
나는 그 안에서 꼬물꼬물대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하고 부대끼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어요.
혁신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버텨야 나오는 거죠.
책상에 앉아서
갑자기 아이디어가 탁 튀어나와서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Q.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는데도
계속 버티시는 이유는 뭘까요?
어떻게 하다 보니 헤어 나오지 못하고
계속하고 있네요.
업보 때문일까요. (웃음)
한 가지 가슴에 담고 있는
농민과의 에피소드가 있어요.
저희가 생산자들과 회의를
주기적으로 하는데
회의에서 이야기하는 만큼
무언가 실현되는 건 많지 않아요.
그런데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도 누군가와 이런 이야기를
같이 하고나면
돌아설 때 마음이 후련하다”고요.
이풀이 그런 역할을 한다고요.
참 어려운 시장이지만
농민 입장에서는
누군가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거죠.
성공 여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주고 있다는 것.